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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간 기차 여행에서 처음으로 ‘나’를 마주했다

by boozada 2025.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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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간 기차 여행에서 처음 으로 나를 마주 했다

그날은 그냥,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뭔가가 쌓여 있었고, 우울했다. 누군가와 대화하기도 싫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자니 답답했다. 그래서 갑자기, 기차표를 예매했다. 충동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어디로 갈지 정확히 정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동쪽’으로. 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랬던 것 같다. 아니, 지금 생각하면 그냥 멀리 가고 싶었던 거다. 누구도 나를 찾지 않는 어딘가로.

내 마음은 이미 멀리 떠나 있었다

기차를 타기 전, 잠깐 플랫폼에 서 있었다. 햇빛이 철로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고, 기차는 예상보다 조용히, 그리고 무심하게 들어왔다. 사람들은 바쁘게 오르내렸지만, 나는  천천히 움직였다. 승객은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내 가방엔 옷 두 벌, 이어폰, 책 한 권, 충전기. 필요한 건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뭘 하러 가는 건 아니었으니까. 도착해서 뭘 할지조차 몰랐다. 기차가 출발하고 몇 정거장쯤 지났을 때, 나는 아직도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감이 없었다. 창밖을 멍하니 보고 있었는데, 어릴 적 살던 동네 근처가 보였다. 그 순간, 괜히 가슴이 철렁했다. 자전거 타고 다니던 골목, 친구와 싸웠던 공터, 엄마 손잡고 지나가던 문방구. 그 모든 것들이 잠깐에 스쳐갔다. 사람의 기억이란 건 참 이상하다. 이유도 없이 찾아오고, 마음을 흔든다. 그렇게 한참 멍하니 있다가 문득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됐다. 정말 아무 이유도 없었던 걸까. 사실은 너무 시끄러운 며칠이 있었고, 그 속에서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사람들 틈에서 웃고는 있었지만, 진짜 내 표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기차를 탔다. 달리는 속도에 맞춰서 내 마음도 좀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었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그저 움직이고 싶었다. 무언가 달라지길 바랐던 것 같기도 하고.

동해 앞바다 파도가 내 안으로 밀려온다

도착한 곳은 작은 바닷가 마을이었다. 역에서 나왔는데, 바람이 조금 찼다. 가게도 거의 없고, 사람도 몇 명밖에 없었다. 그냥 파도 소리만 계속 들렸다. 생각보다 더 조용해서 오히려 불편했다. 이상한 말이지만, 혼자 있고 싶어서 온 여행인데 막상 혼자 있게 되니 어색했다. 작은 편의점에서 생수 하나를 샀고, 길을 따라 걷다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신발에 모래가 들어왔고, 바람이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누군가에게 연락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아무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이 도시에서 그냥 그렇게 있고 싶었다. 파도를 계속 봤다. 와서 부서지고, 밀려가고, 다시 오는 그것. 말없이 반복되는 파도. 그걸 보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런 건가. 와서 부서지고, 멈추고, 다시…’ 그게 사람 사는 거라면, 나도 그냥 흘러가는 중인가 싶었다. 아무 의미 없는 반복 같았지만 그날만큼은 이상하게 마음에 와닿았다. 그 파도가 내 안에 들어온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 나도 숨결이 달라져 있었다

돌아오는 기차는 오후 4시 15분이었다. 역까지 걸어가면서 사진 한 장도 찍지 않았다. 사실 찍을 마음도 없었다. 이 기억은 굳이 저장하지 않아도 내 안에 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 한쪽이 조용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가 정리된 느낌이 있었다. 기차에 앉아 창밖을 다시 봤다. 올 때 봤던 길이지만, 느낌이 달랐다. 아까보다 마음이 한결 덜 복잡했다. 생각이 줄었다. 묘하게 편안했다. 음악을 틀었지만 가사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냥, 그 흐름에 나를 실었다. 별거 안 했는데, 혼자 있는 시간이 이렇게 큰 영향을 줄 줄은 몰랐다. 집에 도착하니 해가 기울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공간이 이상하게 반가웠다. 전에는 그 고요함이 답답했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 고요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제야 알았다. 내가 피하고 싶었던 건 ‘조용함’이 아니라 내 안의 소란이었단 걸. 가끔 생각한다. 그때 그 기차를 타지 않았다면, 아직도 어딘가에서 허둥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하루는 뭔가를 해결해주진 않았지만 내가 내 마음을 마주한 첫날이었다. 어쩌면, 그게 제일 큰 변화일지도 모른다. 내가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 그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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