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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기공의 신화’ 왕린(王林)의 몰락 — 한 방의 뺨으로 끝난 30년의 환상
    중국 ‘기공의 신화’ 왕린(王林)의 몰락 — 한 방의 뺨으로 끝난 30년의 환상

    1980년대 중국은 한때 ‘기공 열풍’이 전국을 휩쓸던 시기였다. 사람들은 기공이 병을 고치고,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중국 제1의 기공 대사(大師)”라 불리던 한 남자, 왕린(王林)이 있었다.


    🌪️ 어둠에서 신비로 — 왕린의 부상

    왕린은 장시성(江西省) 핑샹(萍乡)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에는 범죄에 손을 대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지만, 출소 후 그는 돌연 “기공 수행자”로 변신했다. 그는 자신이 “오랜 세월 아미산(峨眉山)에서 수련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증명할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왕린의 대표 기술은 ‘공빈변사(空盆變蛇)’ — 즉, 빈 그릇에서 뱀이 튀어나오는 묘기였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단순한 마술 트릭에 불과했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를 초자연적 능력으로 여겼다.

    그의 이름은 곧 연예계와 재계로 퍼져나갔다. 배우 자오웨이(赵薇), 리빙빙(李冰冰) 등 유명 여배우들이 사업이나 가족 문제로 그를 찾아왔고, 왕린은 “기공으로 병을 고쳤다”는 소문으로 점점 더 신비한 인물로 포장됐다.


    💼 부와 권력의 중심으로

    왕린은 단순한 ‘기공사’가 아니라 당시 정·재계 인사들이 모여드는 인맥의 중심이었다. 그는 중국의 거물 기업가 마윈(马云, 알리바바 창업자)에게도 ‘공빈변사’를 직접 선보였다. 마윈은 “속임수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고 말했으며, 이 사건은 왕린의 명성을 전국적으로 퍼뜨렸다.

    2004년 이후, 왕린의 명성은 바다를 건너 홍콩 재계로까지 번졌다. 그는 영화계 거물 샹화창(向华强)의 초청으로 ‘도박왕’이라 불린 허홍선(何鸿燊)을 만났는데, 이 만남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 도박왕의 한 방 — 거짓의 종말

    왕린은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허홍선의 저택에서 자신의 대표 기술 ‘공빈변사’를 선보였다. 사람들은 환호했지만, 허홍선은 단번에 ‘속임수’를 간파했다.

    그는 왕린에게 “한 번 더 보여달라”고 요구했지만, 왕린은 “기운이 소진됐다”며 둘러댔다. 순간, 허홍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뺨을 후려쳤다.

    “이런 조잡한 속임수로 나를 속이려 하지 마라.”

    그 한 대의 뺨은 왕린의 화려한 인생을 무너뜨렸다. 그가 돌아온 중국 본토에서는 이미 “홍콩에서 사기 행각이 들통났다”는 소문이 퍼졌고, 지식인들과 언론은 그를 ‘사이비’라 비판하기 시작했다.


    📺 거짓의 붕괴 — ‘기공’의 신화가 깨지다

    2010년대 들어, 중국 중앙방송(CCTV)은 《초점방담(焦点访谈)》 프로그램을 통해 왕린의 ‘기공 쇼’를 과학적으로 검증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 그의 능력은 모두 손기술과 시각 트릭에 불과했다.

    이후 왕린은 제자 조융(邹勇)과의 금전 갈등으로 살인 사건에 연루되며 범죄 혐의를 받게 된다. 사건의 진상은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고, ‘기공 대사’라는 명칭은 완전히 사라졌다.


    ⚰️ 황혼의 끝 — 감옥에서 생을 마치다

    2016년, 왕린은 65세의 나이로 혈관염 및 자가면역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투옥 상태에서 사망했으며, 장례식에는 조문객이 거의 없었다.

    한때 연예인과 재벌, 정치인들이 그 앞에 고개를 숙였던 그였지만, 마지막 순간은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았다.


    🔍 남은 교훈 — “과학보다 신비를 믿을 때 벌어지는 일”

    왕린의 30년은 중국 현대사의 한 단면이었다. 그가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과학적 사고보다 ‘기적’을 믿었던 시대의 공기 덕분이었다.

    오늘날 중국인 대부분은 ‘기공’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미소를 짓는다. 그 웃음 속에는 냉소와 함께, “과학이 미신을 이긴 시대의 기억”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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