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워요. 6월부터 기온이 30도를 넘기기 시작하더니, 7월엔 외출하기조차 싫어질 만큼 뜨겁더라고요. 그래서일까요. 회사에서 휴가 기간 공지가 뜨자마자 달력을 펼쳐 들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처음엔 멀리 가고 싶었는데, 결국 선택한 건 국내 여행이었어요. 가깝고, 익숙하지만, 그만큼 편안한 강릉, 여수, 속초. 낯익은 이름들이지만, 이번 여름엔 다르게 느껴졌어요.첫 번째 목적지는 강릉이었어요. 강릉은 바다와 커피, 그리고 조용한 산책길이 함께 있는 곳이에요. 안목해변 근처에 있는 조용한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해 두었는데, 창밖으로 살짝 바다가 보였어요. 첫날 도착하자마자 해변으로 향했죠. 해가 지기 직전의 햇살은 물빛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여름을 즐기고 있었어요. 어떤 이는 책을 읽고 있었고, 또 어떤 이는 조용히 이어폰을 끼고 파도 소리를 등지고 앉아 있었어요. 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벤치에 앉았어요.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고, 그게 참 좋았어요.
강릉에서의 둘째 날은 오죽헌과 경포호수 산책길을 걸었어요. 땀이 줄줄 났지만, 나무 그늘 아래선 바람이 꽤 시원했어요. 점심으로는 주문진에서 회덮밥을 먹었는데, 매콤하고 시원한 맛이 여름과 참 잘 어울렸죠. 그렇게 강릉에서 이틀을 보내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여름은 피하는 게 아니라 흘려보내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달까요.두 번째 도시는 여수였어요. 밤기차를 타고 내려갔는데, 도착한 새벽의 여수는 조용하고 은은했어요. 일단 바다부터 봐야겠다 싶어 향일암 근처로 갔죠. 해뜨기 전의 어스름한 시간, 어부들이 작은 배에 장비를 옮기고 있었고, 하늘은 분홍빛으로 천천히 물들고 있었어요. 저는 조용히 바위에 앉아 그 장면을 바라보았어요.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은 제법 많은 걸 느끼게 했어요.
여수에서는 여수밤바다를 봐야 하니까 저녁엔 돌산대교 근처로 갔어요. 케이블카를 타고 바다 위를 지나며 보았던 도시의 불빛은 마치 별들이 도시로 내려앉은 것 같았어요. 식당에 들어가서 간장게장과 해물탕을 먹었는데, 짭조름하고 달큼한 맛이 정말 좋았어요. 저는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어요. 주변의 웃음소리, 바다 냄새, 그리고 따뜻한 국물. 그것만으로도 여름밤은 충분했어요.세 번째로 간 곳은 속초였어요. 마지막 목적지였고, 가장 가벼운 마음으로 도착했어요. 속초는 언제 와도 익숙해요. 바다, 시장, 그리고 높은 하늘. 이 세 가지만으로도 여행이 완성되는 곳이죠. 첫날은 해수욕장에서 튜브를 빌려 파도에 몸을 맡겼어요.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고, 파라솔 아래에서 자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저는 그냥 물에 둥둥 떠 있었어요.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떠 있었어요. 그렇게 한참을 흘렀고, 해가 저물 즈음 숙소로 돌아왔죠.
둘째 날은 설악산 근처를 잠깐 들렀어요. 여름 산은 겨울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줘요. 초록이 짙고, 공기가 촉촉해요. 땀은 났지만,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했어요. 등산을 오래 하진 않았지만, 전망대에서 본 속초 시내와 바다는 묘하게 시원했어요. 내가 걸어 올라온 길이 쭉 펼쳐지고, 저 멀리 바다가 고요하게 있는 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런 걸 보고 사는 거구나."여행 마지막 날엔 중앙시장에서 닭강정을 샀어요. 여름인데도 뜨거운 튀김을 손에 들고 먹는 게 그렇게 싫지 않았어요. 그게 여름이니까요. 땀이 나고, 손이 끈적해져도 괜찮았어요. 여행이 끝난다는 건 아쉬웠지만, 이번 여행은 참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웠어요.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았는데, 모든 순간이 특별했던 그런 여행이었어요.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사진을 정리했어요. 특별한 장면은 많지 않았지만, 그 안에 있는 제 표정은 분명 전보다 부드러웠어요. 바다, 노을, 조용한 골목, 시장의 냄새. 그 모든 게 이번 여름의 기억이 되었어요. 그 어떤 장소보다, 느꼈던 감정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거예요. 여름은 여전히 덥고, 세상은 여전히 바쁘지만, 저는 이 여름이 습하고 덥지만 나쁘지많은 않네요 사람이나 계절이나 장단점은 다 있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