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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바다 근처, 묘지 옆 길을 따라 걸었다

by boozada 2025.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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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바다근처 묘지 옆길을 따라걸었다

여수는 바다 도시다. 많은 사람들이 그 풍경을 보러 간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여수의 바다는, 유람선도 없고 사람도 거의 없던 어떤 오후였다. 내가 그날 걸은 길은 바닷가 바로 옆 묘지가 이어진 좁은 산책로였다. 누구나 지나칠 수 있지만, 아무도 머물지 않는 그 길.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날 느꼈던 건 여수의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 사이에서 나를 잠시 멈추서게 했다.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었다. 묘지옆길이라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게는 위로처럼 느껴졌었다.

유명한 관광지는 빼고 , 발길가는대로

여수에 가면 누구나 가는 곳들이 있다. 돌산대교, 오동도, 향일암. 유명한 해상케이블카와 야경 맛집도 즐비하다. 그날도 나 역시 평범한 관광객이었다. 버스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타고, 검색한 대로 명소 몇 군데를 들렀다. 카페도 갔다. 사진도 찍고, 유명하다는 해물라면도 먹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차지 않았다. 보기엔 예쁜데, 내 마음엔 걸리지 않는 느낌. 뭔가를 했다는 체크리스트만 남고, 감정은 비어 있었다. 그래서 다음 장소를 찾지 않고 그냥 길을 걷기 시작했다. 구글 지도를 껐다. 바다 근처 골목으로 아무 방향이나 택해서 걷다 보니, 생각보다 금방 인적이 드문 길로 들어서게 됐다.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가 오른편으로 난 좁은 길. 가드레일도 없이 해변과 이어진 낮은 시멘트 길. 그 옆으로는 묘지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름이 새겨진 작은 비석들이 일정하지 않은 간격으로 놓여 있었고, 잡초가 군데군데 자라고 있었다. 처음엔 발걸음이 조금 조심스러웠다. 낮인데도 어쩐지 주변이 조용했다. 바다는 멀지 않았는데, 파도 소리도 아주 낮게만 들렸다. 오히려 내 걸음소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바람이 불긴 했지만,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갈 정도로 가벼웠다. 묘지 옆을 지나면서 나는 일부러 속도를 늦췄다. 경건한 감정도 있었지만, 사실은 그냥… 그렇게 느려지고 싶었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멈추는 게 이상하게 자연스러웠다.

그 길을 걷고 있었던 ‘이유 없는 이유’

나는 여행지에서 늘 무언가를 하려 했다.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거나, 어딘가 들르거나. 그런데 그날은 아니었다. 묘지 옆 길을 걷고 있을 때, 나는 아무 목적도 없었다. 사진도 안 찍었다.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도 없었다. 심지어 음악도 안 들었다. 오랜만이었다. 아무 것도 듣지 않고, 아무도 보지 않고, 그냥 나 혼자 있는 기분. 길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한 15분쯤 걷다 보면 작은 나무 데크가 나오고, 그 옆에 낚시하는 아저씨들이 서 있었다. 그 풍경이 참 이상하게 느껴졌다. 한쪽은 죽음을 상징하는 공간, 다른 한쪽은 삶의 여유처럼 보이는 장면. 그 두 공간 사이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있었다. 누군가 낚싯대를 천천히 들어올렸고, 바람이 조금 더 세게 불었다. 어쩌면 그 순간이, 내가 여수라는 도시에 와서 처음으로 감정을 느낀 때였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늘 ‘중간 어딘가’에 서 있는 존재 같다. 여행도 그렇고, 삶도 그렇다. 가려는 곳과 떠나온 곳 사이. 멈출 수 없지만 또 계속 가기도 어려운 그런 지점. 그날 내가 묘지 옆 바닷길에서 멈췄던 것도, 어쩌면 삶의 어느 중간에 놓여 있던 마음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아무도 없던 길,  난 그 안에서 많은 걸 느꼈다

돌아가는 길엔 일부러 같은 길로 돌아왔다. 묘지를 다시 지나고, 바람을 다시 맞았다. 그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내 마음은 조금 정돈된 느낌이었다. 뭔가를 보고 느꼈다기보다는, 아무도 말 걸지 않는 그 길에서 내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은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여수를 다시 떠올릴 때, 나는 야경도 바다도 먼저 떠오르지 않는다. 그 묘지 옆의 길.  사람의 이름도 모르고, 비석도 자세히 보지 않았지만, 그곳의 조용함과 그곳을 걷던 내 발걸음의 무게는 또렷하다. 누군가에게는 이상한 코스일 수도 있다. ‘왜 거길 갔어?’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겐 그 길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되었다. 관광은 사진으로 남고, 여행은 감정으로 남는다고 했다. 내게 그날은 분명히 여행이었다. 묘지 옆을 걷는 순간조차도. 삶과 죽음이 조용히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그 공간에서, 나는 조금 더 조용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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