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처음 비행기를 탔다. 그것도 둘만, 해외로. 나는 몇 번의 해외여행 경험이 있었지만, 엄마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공항에 도착하자 엄마는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와, 나 이런 데 처음 와봐”라고 말했다. 그 순간,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늘 강하고 익숙해 보이던 엄마가 그렇게 낯설어 보인 건 처음이었다. 나는 여권과 탑승권을 다시 확인하며 엄마 손을 꼭 잡았다. 괜히 긴장이 됐다. ‘엄마가 긴장하면 안 되는데, 내가 더 떨리네.’비행기 안, 창가 쪽에 엄마가 앉았다. 이륙 직전, 엄마는 손잡이를 꼭 쥐고 창밖만 바라봤다. 구름을 뚫고 올라갈 때 “세상에…” 하며 조용히 감탄하는 엄마를 보며 나도 덩달아 두근거렸다.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자 엄마는 작게 말했다. “나 진짜 일본 왔네.” 그 말이 괜히 울컥하게 했다. 입국장을 나와 전철을 타고 오사카 도심으로 향하는 길, 엄마는 차창 밖을 계속 봤다. “도로가 참 조용하다. 간판도 예쁘고.” 나는 엄마의 그 말투가 어딘가 아이 같다고 느꼈다. 낯선 나라에서 마주한 엄마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 말도 조금 더 많아졌고, 표정도 부드러웠다.첫날은 도톤보리로 갔다. 오사카 여행자라면 누구나 찾는 거리. 엄마는 길거리 음식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이게 그 유명한 타코야끼야?” 나는 웃으며 “드셔보세요, 엄마”라고 말하고 함께 나눠 먹었다. 뜨거운 문어볼을 후후 불며 먹는 엄마의 얼굴엔 묘한 긴장과 설렘이 섞여 있었다. 구글지도도 낯선 환경도 엄마에겐 모두 처음이었다. “너 없었으면 나 여기 혼자선 절대 못 왔을 거야.” 그런 말들이 괜히 마음을 건드렸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우리는 일본 편의점에 갔다. 삼각김밥, 음료, 과자 몇 개를 사고 돌아와 방바닥에 나란히 앉아 먹었다. 별것 아닌 그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엄마는 작은 TV를 켜고 말없이 일본 예능을 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 옆모습을 바라봤다. 우리 사이에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여행이란 게 꼭 무언가를 많이 보고, 찍고, 놀아야만 의미 있는 게 아니란 걸 다시 느꼈다.
이튿날은 교토를 다녀왔다. 전철 안에서 엄마는 내 어깨에 기대 졸았다. 햇살이 창밖으로 부서지고 있었고, 전철은 조용히 달렸다. 긴카쿠지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이런 풍경은 처음 봐”라고 말했다. 고요한 정원과 소나무 그림자, 물 위에 비치는 빛. 사진보다 더 사진 같던 그 장면을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나는 엄마 앞에서 한 발 뒤를 걸었고, 중간중간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엄마, 여기 앉아봐요.” 나무 벤치에 앉은 엄마는 해가 얼굴에 닿는 것도 모르고 먼 곳을 바라봤다. “참… 좋다.” 그 말만 남겼다.저녁엔 오사카로 돌아와 이자카야에 갔다. 작고 조용한 가게였고, 한국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메뉴판 그림을 보고 고르며 우리는 웃었다. 엄마는 가라아게를 특히 좋아했다. “이거 한국보다 더 바삭한데?” 나는 엄마가 그렇게 음식 하나에도 감탄하는 게 귀엽고, 또 기뻤다.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마음은 살짝 취했다. 거리로 나와 천천히 숙소까지 걸으며 우리는 또 사진을 찍었다. 서로를 찍기도 하고, 풍경을 찍기도 하고. 사진 속 우리는 둘 다 웃고 있었다. 진심으로.
마지막 날 아침,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사 와 침대에 앉아 나눠 먹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공항으로 향하는 전철 안, 엄마는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데 또 오게 될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엄마 손을 살짝 잡았다. 답은 지금이 아니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공항에 도착해 출국 수속을 마치고, 면세점에서 엄마는 지갑 하나를 샀다. “기념으로.” 작은 지갑을 손에 쥔 엄마의 표정은 정말 아이 같았다.비행기 안, 엄마는 창가 자리에 앉아 또 한참을 바라봤다. “이제 또 구름 위로 올라가네.” 나는 그런 엄마를 조용히 바라봤다. 여행 내내 엄마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과 표정이 모두 말해주고 있었다. 이 짧은 3일이 우리에게 어떤 시간이었는지. 공항에 도착해 입국장을 빠져나오며, 엄마는 내 팔짱을 꼈다. “고마워. 네 덕에 참 좋은 거 다 본 것 같아.” 나는 그 말이, 이 여행을 완성시킨 마지막 문장이었다고 생각했다.집에 돌아온 다음날, 엄마는 식탁 위에 일본에서 사온 과자를 올려놨다. “이건 너랑 같이 먹으려고 남겼어.” 우리는 마주 앉아 그 과자를 먹으며 다시 사진을 넘겨봤다. 웃는 얼굴, 걷는 뒷모습,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던 장면. 그 속엔 평소와는 다른 엄마가 있었다. 여행은 끝났지만, 그 기억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이젠 가끔 비행기를 탈 때, 그 첫 비행의 순간을 엄마도 나도 떠올릴 것이다. 그 날의 구름, 그 날의 웃음, 그리고 우리 둘만의 이야기.